날림 속에 묘한 완성도 - 좌천당한 하급 장교가 살아남는 법

이 작품은 어떤 게임의 고인물 유저가 게임 속 세상의 우주 전함 함장으로 깨어나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.

요즘 흔한 도입부입니다.

얼마 전 추천한 '기사의 일기'가 문장을 읽는 맛이 있을 정도로 공들인 문장을 사용하여 작중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장면을 상상하게 해 준다면, 이 작품은 그야말로 웹소설 특유의 간결하고 빠른 속도감으로 문장의 맛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.

문장을 완성하지 않고 짧은 명사구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다반사고, '#'을 이용한 빠른 장면 전환, 게다가 잦은 오타와 문법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마침표의 남발이 영 거슬리는 글입니다.

원래 이런 글은 양판으로 가는 게 예상됩니다.

뻔하고 뻔한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도 우주 전함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은하영웅전설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채워주니까요.

그런데 읽다 보면 양판소로 분류하기에는 설정이 매우 치밀하고 간간이 독특한 전개가 나옵니다.

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간 계기에 대한 떡밥이 단지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뒤에 큰 비밀을 암시하고 있고, 특정 에피소드에서는 SF 소설 다운 현실 비틀기가 읽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녹아 있고, 엉성해 보이는 세계관 속에 정교한 질서가 들어 있습니다.

사실 판타지를 읽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죠. 오탈자가 조금 있거나 문장력이 떨어지거나 클리셰 범벅이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?

그런데 이 글은 재미가 있습니다.

날림으로 만든 줄 알았던 조각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포함된 퍼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재미, 빠른 전개가 주는 속도감,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는 만족감, 조연들의 캐릭터성... 이런 것들이 상당한 재미를 줍니다.

아쉬운 점은 간간이 에피소드 분량 조절을 잘 못해 지루한 챕터가 나온다는 것, 글의 톤 조절에 실패한다는 것, 워낙 빠른 속도로 처리하다 보니 이전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.

하지만 분명한 것은  이 글은 꽤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되고 있으며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음 화를 클릭하게 되는 글이라는 것입니다.

무료 분량을 읽게 되면 유료 부분까지 따라갈 가능성이 높은 글입니다.

시간 나실 때 일독을 권합니다.

https://novel.munpia.com/160500